아아, 쾌속전차 BT-5.
꺼지지 않을 노몬한의 붉은 용자들이여.
소련 적군(赤軍) 순항전차 BT-5
The USSR Red army cruiser tank BT-5
1. 존 월터 크리스티(John Walter Christie)의 도전.
당시 지상에 굴러다니는 물건 - 즉 자동차의 세계에 신예처럼 등장한 한 양반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바로 크리스티. 이미 잠수함 설계자로 데뷔해 직렬 4기통 엔진을 가로배치, 크랭크샤프트(Crank Shaft)가 프런트 엑슬(Front Axle)을 겸하게 한 가솔린차로서는 최초의 4륜구동 차를 개발하기도 한 크리스티였지요.
그 혁신적인 설계에도 불구하고 사업적인 재능이 부족했는지 큰 성공을 거두진 못한 크리스티는 다시 군 관련에 관심을 가지고 전혀 새로운 서스펜션(Suspension)과 놀라운 속도를 가진 전차를 만들어냅니다. 제1차 대전 이후 전차는 확실히 이전의 개념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할 병기였죠. 그러나 여전히 전차는 보전합동의 개념에 머물러 그 속도도 20km/h에 안정된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크리스티는 이 전차에 기병의 개념을 부여한 거죠.
[크리스티가 1928년 처음으로 제공한 전차인 M1928. 일단 이 자체로 채용이 된 것은 아니지만 미 육군으로부터 54,500달러의 지원을 받게 됩니다.]
그가 선보인 M1928은 대형 전륜(轉輪)을 2중 구조의 차체 측면에 수납, 스트로크(Stroke)가 큰 코일 스프링에 독립 현가(懸枷)시키고 마지막 접지 전륜을 기동 전륜을 체인으로 연결해 구동시키는 독특한 서스펜션을 채용하고 있었습니다. 이 결과 기존 립 스프링(Leaf Spring) 형태의 서스펜션이 비해 접지성이 좋아 탁월한 기동력을 얻을 뿐 아니라, 무한궤도를 벗기고 나서는 전륜 그 자체를 바퀴로 쓸 수 있는 장점까지 얻을 수 있었습니다. 거기다 노상 최대속력은 50km/h, 무한궤도를 벗긴 전륜주행은 110km/h를 돌파하는 탁월한 속력을 보여준 것이죠.
2. 국내에서 실패와 적국에서의 성공.
이후 크리스티는 지속적으로 미 육군을 위해 거듭 자신이 설계한 전차의 개량에 착수하게 됩니다. 확실히 크리스티 전차의 속력은 매력적인 것이었으니까요.
[크리스티의 최종작품인 T4 전차.]
수차례의 개량과 그 매력적인 성능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티의 전차는 결국 미 육군에 채용되지 않았습니다. 일단 경제공황이라는 재정의 문제도 그러하거니와 크리스티 방식의 전차들은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거든요. 일단 그 특유의 현가장치를 장비하기 위해선 전륜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본적으로 차체가 절대 가벼워야 했습니다. 즉, 무장이나 방어력이 낮은 건 어떻게든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죠. 또 무한궤도가 피탄 되어도 전차가 가동할 수 있다고 했으나 결국 무한궤도를 벗기고 상당한 시간을 소모한 뒤에야 전차를 가동시킬 수 있기 때문에 그 메리트도 별로 없었습니다. 차라리 따로 장갑차 부대를 굴리는 편이 합리적이죠.
또 전륜마다 스프링이 차체 안으로 배치되어 내부 용적을 그만큼 깎아먹습니다. 이건 또 탄약 적재량이나 승무원의 피로를 생각하면 그만큼 전투가능시간을 낮추는 요소고요. 이에 비해 토션 바(Torsion Bar) 방식은 차체를 지나는 바의 정비가 귀찮은 것을 제외한다면 더욱 효과적이었죠.
결국 당시 전차는 보병이 운영하는 것이었는데, 기병대가 있으니 고속의 전차는 필요 없다는 미 육군의 판단과 빈약한 방어력에 대한 불만으로 거절됩니다.
“우리는 댁의 전차라고 부르는 것에 관심도 없고, 그걸 어디 팔려는지도 몰라.” - by M1931을 사가며 어떤 한 소령.
미 육군으로부터 크리스티에게 테스트를 위한 M1931 전차 1대의 구입 이외에 더 이상의 응답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이 크리스티의 고속전차는 분명 영국,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관심을 끌었고 - 일본도 실제 본토결전용(......) 98식 경전차 케니 B형에 이를 채용했고 영국도 이를 채용한 순항전차를 개발 - 특히 고속전차를 자국 육군의 독트린으로 삼았던 소련은 매우 큰 흥미를 나타냈습니다.
이에 크리스티가 미 육군으로부터 물을 먹은 것을 안 소련은 즉각 크리스티로부터 M1931 전차 2대와 그 면허 생산권을 구입합니다. 당시 미국은 소련을 한 국가단체로서 인정하지 않았지만 국제교역에는 어떤 제재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소련은 자유롭게 상당한 양의 기계류와 공업제품을 수입할 수 있던 시기였습니다.
“우리가 자본가들을 목매달 때 그들은 밧줄을 팔게 될 것이다.”
당시 크리스티의 공장 60명 이상의 기술자를 파견해 선진 공업기술을 습득하게 한 소련은 즉시 M1931의 다운 그레이드 버전 - 리벳 접합식 -을 이미 생산도 하기 전인 1931년 5월 23일 제식전차로 채용하게 됩니다.
1931년 우크라이나의 하리코프(Kharkov) 공장에서 그 조사를 마친 후 즉각 양산준비에 돌입해 1931년 10월에 생산이 시작된 이 신형전차는 선도차 3대가 모스크바로 보내져 11월 7일 혁명 기념일에 BT-2로 공개되게 됩니다. (BT : Быстроходный танк, Bystrokhodny tank의 이니셜로 고속 전차란 뜻) 그 별명은 베테 - БТ - 였지요.
[위가 원판인 M1931, 아래가 BT-2 되겠습니다. 그냥 카피 생산 -ㅅ-]
3. 노몬한의 붉은 용자들.
당시 소련으로서는 BT-2는 분명 상당히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둔 전차였습니다. 미국의 리버티(Liberty) 항공 엔진을 복제한 M-5 수랭식 12기통 V형 가솔린 엔진을 탑재해 통상 52km/h, 장륜 72km/h의 최고속력을 발휘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화력이었습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문제로 45구경 M1930 전차포와 동축 7.62mm DT 기관총을 장비한 녀석이 아니면 기관총 2정을 장비한 녀석이 전부였으니까요. 그것도 M1930 대전차포의 생산이 위력부족으로 중단되어 초기 180대 이후의 440대는 모두 기관총 2정 장비의 극악한 버전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원형이 된 37mm M1930 대전차포. 직사각이라면 500m에서 25mm를 관통하고 800m에서는 20mm를 관통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독일제 KWK 36 37mm 전차포는 500m에서 수직관통력이 50mm, 800m에서는 42mm를 관통했습니다. 이것도 통상철갑탄이고 고속철갑탄으로 가면 격차가 더 심해지죠.]
또 BT-2는 적재 탄약도 96발로 원래 고질적으로 탄약부족이 좀 심했는데 훨씬 더 작은 일본의 95식 경전차가 동급의 37mm 포탄을 120발이나 싣고 다녔다는 것은 확실히 문제였습니다. BT-2도 속력이 빠르나, 하호도 최고속력이 40km/h로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고요.
[이 녀석과 의외로 그렇게 격차가 나지 않는다는 것은 좀 문제긴 하다.]
때문에 배기구와 소음기의 개선을 시작해 배기구의 이물질 방지용 철망 커버를 씌우는 것을 시작으로 차례차례 개량이 이루어집니다. 또한 신형 45mm 전차포의 탑재, T26에 사용되는 포탑을 검토한 시제 BT-3, 4를 거쳐 마침내 본격 개량형인 BT-5가 완성되게 됩니다.
[오오, 멋진 전차. 어떤가, 타지 않겠는가?]
현격히 강화된 M1932 42구경 45mm 전차포와 2인용으로 대형화된 포탑, 400마력으로 향상된 엔진, 대형 소음기가 기관부의 후부 패널에서 직접 배기관이 돌출된 형태로 수정된 것이 특징인 이 신형 전차는 1933년부터 1935년에 이르기까지 약 3000대가 생산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BT가 최초로 투입된 전투는 바로 1936년 10월 스페인 내란이었죠.
[이런 것이 더 사실적이고 보편적. 게르니카에서 살아남은 모자의 모습.]
당시 소련은 각종 전차와 더불어 최신예 주력전차인 BT-5 50대를 즉시 스페인 공화파를 지원하고자 파견합니다. 이에 이탈리아와 독일 역시 그들의 전차를 지원하죠. 스페인은 마치 6.25처럼 강대국의 대리전이자 신형병기의 실험장이 되는 비극의 땅이 된 겁니다.
[왕당파가 노획한 T-26 전차.]
당시 BT-5의 45mm 전차포는 독일, 이탈리아의 1, 2호 전차. 이탈리아 Cv-33과 비교할 수 없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고속을 위해 희생한 13mm의 얇은 장갑은 경사장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전차포에 극히 취약한 모습을 보여줬고, 화염병 공격에도 너무 무력하다는 문제점을 드러냈습니다.
[내전 종결 후, 독일과 이탈리아 전차들의 개선 퍼레이드. 공화국이란 놈들은 이런 전차를 가진 놈들에게 당한 것.]
그 전훈을 나름대로 검토했고 또 그 문제점을 나름대로 파악해서 새로운 전차 개발에 들어간 소련이었으나 다시 큰 전투가 BT 전차들을 기다리게 됩니다. 바로 노몬한 전투와 겨울전쟁이죠. -ㅅ-;;
[노몬한 전투에 투입된 BT-5. BT-2에 이어 채택된 말굽형 포탑과 원형 포탑 2종류를 확연히 알아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물론 노몬한 전투에서 일본군의 전차는 결코 무서워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단 성능은 차치하더라도 그 숫자부터가 적었으니까요. 노몬한 전투 당시에 투입된 일본 제3, 4전차 연대의 통합전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89식 중전차 갑형 : 8대
89식 중전차 을형 : 26대
97식 중전차 치하 : 4대
95식 경전차 : 35대
97식 경장갑차 : 4대
94식 경장갑차 : 15대
이에 비해 소련군의 장갑차량 투입은 전차만 597대. 탄약 운반차와 장갑차를 다 긁어모아도 겨우 90대를 넘어가는 일본 기갑전력은 감히 비교할 수도 없는 전력이었죠.
[님들아, 닥벌호요. ㄱㅅ]
그러나 역시 이 전투에서도 취약한 장갑이 원인이 되어 일본군의 화염병 공격와 철조망을 비롯한 장애물 배치. 또한 일본군의 야포 공격을 받아 106대 파괴, 67대 대파 방폐라는 심각한 타격을 입습니다. 95식 경전차와 장갑두께가 비슷하니 역시 95식의 37mm 전차포에 관통되었다는 소리도 헛소리는 아니니 말입니다.
또 소련군은 지휘용 전차에만 본대와 연락을 위한 무전기를 달고 이외의 전차는 수기에 통신을 의존했기에 일본군이 이를 파악하고 지휘용 전차만 격파하자 큰 곤란에 빠졌다는 일화도 빼놓으면 곤란하겠지요.
[여하튼 여기서 좀 당했다, 의외로. 짤방은 주코프 각하와 일본군의 속사포에 격파된 BA-10 장갑차.]
그리고 연이은 핀란드와의 겨울전쟁. 여기서 우리 핀란드 츄바츄바 동무들이 붉은 군대에게 건내준 위문품인 몰로토프의 칵테일이 어떤 화끈한 맛을 보여줬는지는 아마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시리라 봅니다.
[추운 날씨에는 언제나 몰로토프의 칵테일을!!]
4. 고속전차가 남긴 것들.
결국 소련도 이후로는 이런 얇은 장갑의 고속전차보다는 방어력과 화력, 기동성 모두에 밸런스를 맞춘 전차개발에 매진합니다. 속도만을 추구하는 것은 결코 전차로서 그 요구사항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을 깨달았겠지요.
[독소전에서 독일 노획 프랑스제 R-34에 끌려가는 BT-2 전차.]
하지만 이후 주력 전차에서 밀려난 후에도 BT-5와 이후의 BT-7, 이전의 BT 시리즈들은 소련군에게 귀중한 전차운영교리의 교훈을 남겨줬으며 위대한 조국 전쟁에서 파시스트들의 전차부대에 맞서 용전분투를 거듭함으로서 그 맡은 바 임무를 수행했다는 이야기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BT-5 쾌속전차 제원
전장:5.50m
전폭:2.23m
전고:2.20m
완비중량:11.5t
승무원:3명
엔진:M-5 4행정 V형12기통 수랭식 가솔린 엔진
최대출력:400hp/2,000rpm
최대속도:52km/h(장륜 72km/h)
주행거리:150km(장륜 250km)
무장:42구경 45mm M1932 전차포 (휴대탄수 115발 : 철갑탄 58, 유탄 57), 7.62mm DT 기관총 1정(휴대탄수 2709발)
장갑두께 : 6~13mm
바리에이션
BT-5 초기형 : 1933년형이라 불리는 말발굽 모양의 포탑을 탑재한 형태.
BT-5 후기형 : 1934년형이라 불리는 대형 원통형 포탑 탑재형.
BT-5A : 76.2mm 유탄포를 장비한 근접지원형.
BT-5V or 5TU : 포탑에 프레임 안테나를 장비한 지휘관형.